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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엄마의 양손

by 무벅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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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좀 지어 먹어라

손주를 출산하고 가장이 된 아들이 걱정되시는지 엄마는 내게 '며느리 한약 지을 때 네 한약도 같이 지어라'라고 서너 번 말씀하셨다. 도통 한약에 관심이 없는 나는 매번 알겠다고 대답만 했고 진짜로 한약을 지어먹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지난 주말 와이프랑 신생아 아들이랑 셋이서 한의원에 와이프 한약을 지으러 갔다. 소파에 앉아 잠깐 대기를 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돌연 제안을 했다.

 

"오빠 한약 같이 짓자"

 

나는 갑자기 왜 당신까지 그러냐며 극구 거절했다. 그랬더니 와이프가 어차피 용돈 쓸 데도 없는 데 한 달 치 용돈을 받지 않겠다며 그 돈으로 내 한약을 지으라는 거다. 엄마도 그렇고 와이프도 그렇고 둘 다 내 건강을 이리도 챙기는거 보면 나는 참 사랑 듬뿍 받는 남자구나 싶다. 그러면서 나 혼자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참에 나도 한약이나 한번 먹어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고 와이프 진맥이 끝난 뒤 나 역시 진맥을 받았다. 신장 기능이 약하고 몸 안의 열이 몸 밖으로 나가지를 못한다는 이해하기 힘든 진맥을 받고는 어쨌든 둘 다 한 달치씩의 한약을 짓기로 했다. 지은 한약은 택배로 받기로 하고 배송은 3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다음날, 중복이라며 어머니가 삼계탕을 만들어 오셨다. 아버지랑 두분이서 양손 가득 뭐를 들고 현관에 입장하셨다.

나는 뭔지 모를 바구니와 솥, 쇼핑백을 보고는 또 뭐를 이렇게 잔뜩 싸왔냐며 투덜댔다.

 

"이거는 삼계탕, 이거는 니 한약, 이거는 니네가 산다고 하면서 매번 사지 않길래 사왔다(1구 인덕션).. 한약은 네가 보나 마나 안 먹을게 뻔해서 그냥 아빠랑 어제 가서 지어왔으니 잔소리하지 말고 꼭 먹어라. 며느리 꺼는 진맥을 보고 지어야 할 거 같아서 함부로 안 사 왔다."

 

"엄마, 말을 하지.. 나 어제 한약 지었어"

 

"그거 다 먹고 이거 먹어. 이거도 비싸게 주고 샀어."

 

"아 엄마....."

 

40년 가까이 나를 지켜본 엄마는 내 성격을 너무 빤히 알고 계셔서 이제는 내 의견은 묻지 않고 알아서 해오신다.

그리고 인덕션은 작년 겨울 이 집에 이사를 오면서 큰 식탁을 샀는데 식탁 위에 인덕션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툭 던진 말이었다. 그 뒤로 집에 오실 때면 인덕션 아직 안 샀냐며 가끔 물으셨는데 그냥 다음에 살 꺼라며 별생각 없이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인덕션이 생기지 않은 식탁이 신경 쓰이셨는지 그걸 직접 사 가지고 오신 거다.

 

너무 죄송스럽고 미안하고. 왜 이렇게 그냥 다 죄송한지 모르겠다. 속에서는 돈도 없으면서 한약, 인덕션을 왜 사 오냐고 짜증 나면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나 때문에 돈 좀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아들 해주는 건데 돈이 뭐가 아깝냐며 오히려 못해줄까 봐 겁난다는 엄마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판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며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 티가 팍팍 나는 두 분이서 어떻게든 뭐라도 해주고 싶으셔서 애쓰시는 거 보면 나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아직도 엄마 앞에서 철들지 않은 아들내미는 오늘도 투덜투덜 내일도 투덜 대기만 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왜 엄마 앞에서만 그렇게 철없는 어린애가 되는 건지.. 아 엄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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